top of page

스티븐 컨,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 1880 ~ 1918』, 휴머니스트

이 글은 제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과제물로 제출하게 된 스티븐 컨의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 1880 ~ 1918』의 서평입니다. 당시에는 저 자신을 좀 우쭐하게 만든 숙제였습니다만 다시 읽으니 장황한 문장과 아름답지 못한 어휘사용, 메시지가 불분명한 표현들 등등 이래저래 창피하기 그지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타나 고쳐써 빨리 올리자는 처음 계획은 어그러지고 하루 종일 이 글을 전체적으로 몇 번씩 손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가 봐도 "이거 학교 숙제로 쓴 글이구만"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글입니다.


그래도 용감하게 여기 제 글을 소개하게 된 건, 이 책에 대한 저의 애정 때문입니다. 책방을 열기로 했을 때, 서가에 놓아야 하는 책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책은 저희 책방에서 '끝까지 안 팔릴 것 같은 책' 탑3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팔리든 팔리지 않든 좋은 책은 여전히 좋은 책입니다. 이 글은 공짜로 읽을 수 있으니, 이런 글로라도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 1880 ~ 1918』가 얼마나 재밌고 의미있는 책인지 알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사건들을 쭈욱 늘여놓는다고 해서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 책에 대해 한 독자가 인터넷 서적판매 사이트에 남긴 한줄 평이다. 이것은 그저 불평에 불과하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에 담긴 방대한 지식을 지적으로 소화해 가며 저자의 문제의식을 파악하는데 실패했을 그 독자가 느꼈을 당혹스러움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철학, 문학, 예술, 전쟁 각 분야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는 1880년부터 1918년까지, 30년에 걸쳐 나타난 시간과 공간과 관련된 문화적 사건과 경험들을 700여 페이지 안에 정리해 낸 컨의 작업은 그 분량만 보더라도 압도적이다. 이 책을 쓰는 일은 “문화사 연구의 본질적인 주제를 다루겠다”는 그의 학문적 야심의 크기에 맞는 지적 작업이었을 것이다. 문화사 연구의 본질적인 주제가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라는 주장을 통해 글쓴이는 문화에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요소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컨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모든 경험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시공간이라는 틀을 통해 입체파, 래그타임 음악, 증기선, 마천루, 기관총 등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새롭게 볼 수 있음을, 이 두꺼운 책 안에서 흥미진진하게 증명해낸다. 그러나 글쓴이가 다루는 자료가 워낙 방대한 탓에, 앞서 소개한 불평꾼처럼 다른 독자들도 책 속에서 길을 잃고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주제별로 정리된 당대의 글과 그림은 부주의하게 대할 경우 단순한 나열에 불과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책에 담긴 내용에서 지식의 ‘나열’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 예를 들어 표준시나 자전거 등을 처음 접했던 당시 사람들이 겪은 놀라운 경험들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다. 가볍게 머리를 비우고 독서를 통해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굳이 어떤 주제나 문제의식을 의식하며 이 책을 독해하려 한다면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첫 번째는 당시의 기술적 문화적 변화가 위계적인 시공간을 해체함으로써 이루어진 ‘시공간의 민주화’에 주목하며 책을 읽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통신기술과 운송기술은 시공간에 대한 인식능력과 상상력을 확장시켰으며, 획일화된 공적인 시간을 확립시켰다. 또한 동시에 획일화된 공적 시간에 저항하는 사적 시간경험에 대한 탐색도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하여 시간과 공간이 민주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저자 본인이 시공간의 민주화를 시공간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전성기의 유럽문명이 이루어 낸 가장 중요한 진전으로 뽑았으니, 독자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문화사 연구가 전쟁사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 책은 마지막 두 장에 걸쳐서 1차 세계대전을 다루는데, 사실 문화사 연구서에서 전쟁을 다루었다는 점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정치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전쟁도 문화사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컨의 1차 대전 연구는 여느 전쟁사 연구와 달리 군주들부터 병사들까지 전쟁 당사자들이 겪은 역사적 체험들을 생생하게 살려내면서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는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역사적 풍경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문화사 연구의 강점이 전쟁사 연구에서도 발휘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들을 차지하는 만큼, 우리는 1차 대전을 다루는 부분에서 그에 앞선 600페이지에 걸쳐 설명되는 ‘좋은 시절’의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가 1차 대전이라는 비극적인 형태로 결산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결말을 염두에 두고 신기술, 운송기술, 매체기술이 가져온 일련의 문화적 현상들과 시공간 경험의 변화들을 읽어나갈 수 있다. 시공간을 확장하고 통제하며 절정을 향해 가던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가 전쟁으로 스스로 파멸하는 장대한 서사를 인식하며 독서를 한 독자들이라면, 분명 이 서사로부터 근대의 배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기술적 진보는 개인적 경험의 발견과 위계적 질서의 놀라운 경험들과 미래에 대한 낙관을 가져왔으나 그러한 진보와 낙관은 또한 전쟁을 가져옴으로써 스스로를 배신했던 것이다. 스티븐 컨의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읽기는 1차 세계대전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이루어지는 근대문화 탐험이다. 유럽인들이 좋은 시절을 누렸던 시대에 가장 암울하고 정체된 근대사를 시작해야 했던 한국인 독자들은 이 독서로부터 19세기 유럽의 근대적 성취들에 대하여 그들이 품은 동경에 대해 반성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시공간적 민주화라는 가장 중요한 시공간적 진보만큼이나 1차 대전이 가져온 퇴보, 근대의 배신을 이 책의 중요한 주제로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식민지가 된 과거와 미래

근대 시간에 대한 첫 번째 에피소드는 표준시간의 도입이다. 우리는 근대적인 표준시간이 사용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표준시를 도입함으로써 시간마저 합리적으로 관리하려한 근대 유럽인들의 욕망에도 주목해야 한다. 표준시간대는 군사적 정복과 발전된 이동능력으로 광대해진 제국의 공간을 하나의 공적 시간으로 묶이게 했고, 그 결과 기차와 선박, 근대적 동원체제 등 근대사회의 각종 제도들이 시간표라는 형식을 통해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시간 안으로 편입되었다. 표준시간대는 시간을 관리하려는 욕망의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달력을 개혁하고, 운송수단의 속도를 더 빠르게 하고, 크로노사이클 그래프 등의 기법을 통해 ‘과학적인 관리법’을 연구하는 것 등은 모두 과학기술을 통해 시간을 지배하려했던 근대 유럽인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 결과 통제 가능한 시간으로서 현재는 점점 더 ‘두터워졌다’. 이 모든 것은 전신과 전화 같은 혁신적인 통신수단, 더 빠르고 거대한 운송수단, 새로운 기록수단이 발명되면서 가능해졌다. ‘두터워진 현재’라는 현상은 그러한 과학기술의 성과물들과, 합리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욕망이 결합하면서 생긴 문화적인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는 기록장치에 의해 현재시점에 재생되며 끌어당겨졌고, 미래 역시 과학적인 예측을 통해 현재 시점에 시간표로 작성되었다. 이렇게 현재는 과거로 미래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제국주의적 공간

그동안 제국주의라는 현상은 대체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명되었다. 예컨대 제국주의는 과잉생산하는 자본주의를 위해 투자처를 확장하려는 것이라는 홉슨과 레닌의 분석은 제국주의에 대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설명일 것이다. 그들의 설명에 뒤이어 다른 반론과 주장들도 나타났지만 역시 주로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설명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국주의를 공간과 관련된 문화적 현상들을 통해 설명해보고자 한 컨의 시도는 그 자체로 독특하다. 컨의 주장을 살펴보면 제국주의에 의한 공간적 팽창은 당시 유럽인들이 과거와 미래를 잠식하며 현재를 두텁게 하려는 욕망과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다. 즉 통제 가능성을 최대화하려는 동기가 작동한 것이다. 유럽인들은 시간에 대해서도 그러했듯 공간에서도 통제 가능한 영역을 최대한 확대함으로써 안전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공간을 확보하려는 강박은 ‘공간 중독과 폐소 공포’라는 저자의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통신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공간 인식 능력이 공간의 크기에 제약을 덜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빠른 운송수단 역시 제국에게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이 공간적으로 팽창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과학과 기술 수준은 원하는 만큼 통제능력을 추구할 수 있게 하였으며 그러한 능력이 끝없이 확대되리라는 낙관도 가능하게 했다. 미국에서 공수해온 얼음을 음료수에 넣어 마시고, 시간표에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하겠다고 장담하는 런던의 신사 ‘필리어스 포그’의 자신감으로 비유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열강의 야망은 통제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한 한 크게 확보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구상의 공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욕망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처녀지’, ‘미개척지’ 등 폭력적인 어휘를 통해 표상되는 ‘열린’공간들이 마침내 소멸해버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등장한 지정학은 합리적인 이유와 윤리적인 이유를 들며 강대국들에게 공간적 팽창을 권유했다. 결국 열린 공간들이 소멸하면서 시공간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려는 열강들의 욕망은 ‘지정학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하였고, 제국주의는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배태하게 되었다. 문화사적 연구는 정치사나 경제사가 보여주지 못하는 역사적 ‘경험’들을 되살려낸다는데 있다. 컨의 제국주의 연구 역시 마찬가지로, 그는 유럽 열강들이 시공간적인 팽창을 통해 안전과 확실성을 합리적으로 보장해줄 시공간 확보와 관리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는 사실들을 문화사학적으로 밝혀냄으로써 제국주의를 발생시킨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동기를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컨의 문화사적 연구 역시 다른 문화사연구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사료 선택과 연구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있었던 시공간 경험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당대의 문학작품들과 철학적 저술들, 인상파와 입체파의 미술기법, 몽타주 등의 영화 편집기법, 음악의 스타일 등 ‘객관적’인 사료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을 사료로서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컨은 유럽인들이 공간 확보를 욕망하게 만든 동기인 공간중독과 폐소공포증을 논증하기 위해, 폐소공포증을 느끼는 주인공들이 제국주의 시대의 소설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주장한 문학 평론가의 분석을 인용했다. 자전거의 속도가 가져온 충격도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과 당시의 포스터들을 제시하여 설명하고, 기존 공간개념이 해체되었다는 주장도 배경과 주제가 뒤섞여가는 당대의 화풍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모두 ‘객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사료들이다. 유비를 통해 사소해 보이는 사건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아내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도 전통적인 역사연구자들에게는 문제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예컨대 사지가 흩어져버릴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정신병자와, 머지않아 해체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으며 유럽의 ‘환자’라고 불렸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유비한 것은 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나 그 정신병자가 느끼는 피해망상과 죄책감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사람들이 제국의 종말을 예감하면서 느낀 절망감과 유비시킨 덕분에 21세기 독자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사람들을 내리누른 비관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컨이 사료를 선택하고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은 실증주의자들을 아연하게 하겠으나 이는 문화사연구의 미덕, 즉 생생하게 시대를 되살려내는 문화사연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더 없이 적절한 방법이다. 특히 그의 연구방법은 표준시간에 대한 개별적 시간경험의 저항과 전통적 공간적 위계의 붕괴에 따른 시공간의 민주화를 포착하고 설명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민주화된 시공간에 대한 개인적 경험들이야말로 유럽인들이 당대를 ‘참 좋았던 시절’로 회고하게 만든 요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가능케 했던 근대가 세계대전이라는 최종적인 형태를 취함으로써 그 경험들을 끝장냈다는 역설에서 세계대전의 비극성과 역사적 의의도 새롭게 발견될 수 있다.



좋았던 시절

열강의 지도자들이 시간을 최강대국의 시간에 맞춰 표준화하는 동안 공적 시간에 저항하면서 사적 시간을 발견하려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졌다. 프루스트와 니체, 입센, 조이스 등 문학가들과 철학자들은 ‘각자의 시간’을 발견하고 그 의의를 고민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시간의 상대성을 주장함으로써 개인적 시간경험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해주었다. 개별적 과거는 개인의 고유한 경험에 대한 고민거리와 논쟁점들을 던졌으며,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미래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대신 미래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제공했다. SF작가들은 미래에 대한 적극적 상상력을 펼치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이었다. 전화는 전화 거는 이들에게 전화 받을 때의 불안한 수동성과 대비되는 적극적인 미래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전화는 시간 뿐 아니라 공간개념도 바꾸어버렸다. 한 때 거리(距離)는 성역과 세속을 나누고 사회적 공간을 위계적으로 나누었지만, 전화는 단절을 일으키는 거리를 뚫고 들어가며 공간적 질서를 유지하던 경계선들을 엎어버렸다. 넓어진 활동공간이 강요한 공공교통수단의 이용은 여러 계급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섞이는 경험을 하게 했다. 이러한 공간적 위계의 상실은 사회적 위계도 약화시켰다. 기술과 문화의 상호작용이 일으킨 변화는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변화시켰다. 다시 말하지만 시공간 경험의 변화에서 저자가 뽑는 가장 중요한 진보는 사적 시간의 실제성이 인정되고 공간에 의한 전통적 위계가 평준화되었다는 점, 즉 시공간의 민주화다. 당시의 문학적, 예술적, 철학적 성취 역시 그러한 진보와 함께 이루어졌다. 과학적, 기술적 성취와 이전에는 없었던 문화적 경험,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을 하는 주체인 ‘나’를 만끽한 것이야말로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벨 에포크’라고 부를 수 있게 해준 가장 좋은 추억이었을 것이다.



문화사적 전쟁사 연구

어렸을 적 읽었던 학습만화에서 1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원인은 매우 복잡하여 이것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문구에 앞서 소개된 ‘1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은 해외식민지 점령에서 뒤쳐진 후발제국들과 기성 식민제국 사이의 갈등이었다. 이것은 아마 상식으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차 대전의 발발 원인은 매우 복잡하며 제국들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던 이 학습만화의 단서를 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컨의 문화사적 접근은 기존 학설이 보여주지 못한 측면들을 보여준다는데 그 의의를 평가해줄 수 있다. 1차 대전의 발발단계에서 컨이 주목했던 것은 근대의 시공간 인식이 빚어낸 전쟁당사국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의 기행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전례 없이 다급한 회신을 요구했으며 상대의 답신이 오기 전부터 동원을 시작할 시점을 서둘러서 계산했다. 이것은 20세기 초의 통신과 교통기술이 빠른 의사소통과 빠른 동원을 가능하게 했던 탓이다. 상호불신에 빠져있었던 당사국 정치인들은 전신의 신속함에만 의존한 채 침착하고 차분한 상호 신뢰 구축은 완전히 망각해버렸으며, 상대방을 속도와 규모로 압도하는 동원계획을 보다 먼저 발동함으로써 누구보다 먼저 우세를 점해야만 한다는 강박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벨 에포크를 장식했던 광적인 속도경쟁이 동원속도 경쟁으로 이어졌던 것인데 이런 경쟁은 결국 강대국들이 전쟁을 향해 경쟁적으로 내달린 꼴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런 안타까울 정도의 광기와 두려움은 슐리펜 계획이라는 강박적이고 오만한 전쟁계획으로 구체화된다. 프랑스에 대해 군사적 우세를 선점하려던 독일 수뇌부의 치밀한 시간표와 동선 구상은 시간과 공간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려했던 근대적 욕망을 집약시킨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을 가능하게 했던 기술들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위해 시간표를 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전쟁 시간표에 짜 맞추는 역설적인 처지로 전락하게끔 만들고 말았다. 이런 식의 설명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정치인들의 판단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피해간다. 대신 수백만 명의 목숨이 오가는 국가적 정책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합리함과 나약함을 거치며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문화사적 전쟁사 연구는 전쟁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과 장군들에게서 ‘역사적 주체’라는 거창한 타이틀 빼앗아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전쟁 피해자들인 참전군인들 역시 사상자 통계나 전술지도의 화살표 신세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겪은 사적인 고통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참전국 사람들의 ‘개별적 경험’을 통해, 기성 식민제국들과 후발제국 사이의 갈등을 문화적 정신적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다. 오랜 역사라는 경험이 있는 프랑스인들과 영국인들은 안정적인 미래를 낙관할 수 있었으며, 러시아 역시 방대한 공간을 바탕으로 장대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반면 신생국들이나 마찬가지였던 삼국동맹 국가들은 현재의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과거가 없었고 공간적으로도 기성 제국들로 둘러싸여 닫힌 공간에 갇혀있었다. 이런 시공간적 상황으로 인해 삼국동맹 국가들은 지정학적인 ‘폐소공포증’에 시달렸으며 미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불안을 느꼈다. 현재의 두터움이 경쟁자들에 비해 얄팍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제국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정치인들은 시간에 초조하게 쫓기게 되었으며, 결국 시간적으로 느긋한 적들에 대항하여 다급하고 극단적이며 절망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외교가 어긋나는 데는 근대기술의 배신도 작용했다.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고 믿었던 전신은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무용지물이었다.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적 경험을 하고 있던 정치지도자들은 전신을 통해 피상적인 의견교환을 하는데 그쳤으며 결국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기술적 진보는 병사들도 배신했다. 병사들은 본부에서 맞춘 손목시계를 찬 채로 일제돌격 명령에 대기했다. 그들은 획일적인 시간 속에서 획일적인 행동만을 강요하는 공적 시간과 공적 시간경험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으며 자신만의 사적 경험은 빼앗겼다. 병사들은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포탄이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소극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오직 공격 시간표를 작성하는 장군들의 것이었으며 미래 역시 병사들의 것이 아니었다. 병사들은 단지 ‘기다리는 기계’였다. 개별적 경험을 하는 주체는 좋은 시절의 추억과 함께 사라졌다. 바로 그 좋은 시절을 가능케 한 여러 기술적 조건들 때문에. 병사들의 현재가 한없이 얇아지는 동안 장군들은 전선에서 멀찍이 떨어진 사령부에서 방대한 전장을 지휘하며 전쟁 계획을 짰다. 이것은 통신과 운송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었다. 전선의 참호와 후방 사령부 사이의 시공간적 불평등함은 공간적인 위계나 마찬가지였다. 이 역시 한 때 공간적 위계를 무너뜨렸던 근대적 기술이 가져온 반동이었다. 우리는 이 외에도 앞서 소개된 좋은 시절에 이루어 낸 근대적 성취들이 전쟁에 어떻게 동원되었는지, 그것이 어떠한 파멸적 결과를 야기했는지에 대한 다른 사례들도 찾아볼 수 있다. 전화, 전신, 표준시간, 손목시계, 철도 등 시공간의 민주화라는 ‘좋은 시절’의 문화적 성과를 가져온 과학기술들이야말로 그 문화적 성과들을 한 번에 날려버린 1차 세계대전을 가능케 했던 요소들이었다. 근대의 기술적 성취들, 특히 속도를 찬양했던 미래파 예술가들은 인간을 가장 빠르게 대량살육한 근대적 속도의 전쟁터에서 전멸했다. 미래파의 괴멸은 그 자체로 근대의 진면목을 보여준 미래파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제목은 근대의 배신, 아니면 근대의 미래라고 하면 적당할 것이다. 전쟁이 역설적인 형태로 미래파 작품을 완성시킨 셈이다. 이것이 피식민지 원주민들의 후손인 우리가 미처 모른 채 동경했던 19세기 유럽 근대의 어두운 단면이었다.



기술과 문화적 현상들

이 책을 읽을 때 길을 잃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실수는 기술결정론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확실히 비행기, 영화, 전신과 전화기 등 기술적 업적들에 의해 바뀌게 된 시공간 개념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저자는 서론에서 문화사가 과학기술 결정론에 빠져들지 말아야 함을 분명히 경고하면서 과학기술과 문화의 상호작용에 좀 더 주목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실제로 전신과 철도 등 똑같이 근대의 산물을 누렸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러시아제국이 서로 다른 시간을 경험했다는 사실, 그리고 전쟁 전과 똑같은 기술이 전쟁터에서 시공간적 퇴보를 야기했음을 상기한다면 과학기술 결정론을 이 책의 결론으로 내리는 것은 명백한 오독임을 알 수 있다. 문화와 과학기술이 상호작용한 결과 시간과 공간과 관련된 주목할 만한 문화적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히 이 책이 다루는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이메일도 있고 SNS도 있는데 굳이 대면보고가 필요하냐고 반문하며 활짝 웃던 박근혜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을 최첨단 통신기술이 오히려 공간을 분리시키고, 그러한 공간의 분리가 불통으로 설명되는 구시대적인 사회적 위계를 부활시키는 기묘한 상황이 21세기의 최근 몇 년간 벌어졌다. 그러니까 현대적 기술이 꼭 현대적 시공간을 창출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기술은 여러 맥락과 상호작용하며 시대적인 문화현상을 만들어낸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여 다시 시공간적 민주화를 복구하기 위해 동원된 것은 현대기술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가장 원시적인 통신수단인 함성소리와 불빛신호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인들은 킬로미터 단위로 공간을 표상하는 것에 익숙해졌으나, 21세기 한국인들은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냐 200미터까지냐 하는 문제로 공권력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이 택한 원시적인 통신기술이 위계질서에 의해 나뉘어져 버린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단위의 거리계산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 기술이 전근대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반면 원시 기술이 그러한 위계적인 공간을 해체하면서 열린 광장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신기한 역사를 겪으며, 그저 우리가 이 시기를 훗날 ‘벨 에포크’, 좋은 시절로 회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16)


---------------------------------------------------------------------------------------------------------------------


눈치 빠르신 분은, 이 글이 촛불시위가 한참일 때 쓰인 글이라는 것을 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고치며 현재시제로 쓰인 마지막 몇 문장들을 과거시제로 고쳐쓸까 고민했지만 이 글이 쓰이고 있던 바로 그 때의 역사적 상황이 글 안에 남는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 그만두었습니다. 촛불시위에 고무되어 있던 상황에서 이 책은 저에게 정말 많은 영감과 감동, 통찰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저에게 그토록 뜻깊은 것이겠지요.


과제물이 제출되고 햇수로 4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광화문에는 대형교회가 주도하는 보수집회가 자리잡고 있고, 청와대 앞에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텐트가 세워졌습니다.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겨울 밤 촛불을 들을 때 저는 '벨 에포크', 해피엔딩을 간절히 바랐습니다만, 아무래도 역사에 그런 식의 엔딩은 없겠지요. 아무튼 전혀 달라진 광장 풍경은, 저에게 '시공간의 현대문화'에 대해 4년 전과 다른 방향의 고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 Comment


peter
Feb 15, 2020

Bravo! 좋은 글 계속 기대하겠음....

Lik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