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전문적인 사회과학 논문같은 (재미없고 어려워보이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지만, 저로서는 이 책을 그람시에 관심을 갖고 계신 독자들을 위한 입문서로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람시라고 하면 다들 『그람시의 옥중수고』(이하 『옥중수고』)를 떠올리시겠지만, 사실 『옥중수고』는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옥중수고』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이 아닌 탓에 독자가 겪을 수 밖에 없는 혼란스러움이 적지 않은데다가, 『옥중수고』가 그람시 시대 이탈리아 정치에 대한 분석이므로 한국인으로서는 그람시가 하려는 말을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옥중수고』에서 그의 '헤게모니' 등 그람시가 제시한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당시 이탈리아 정치와 문화에 대한 그람시의 실증적인 분석은 한국 독자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그람시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갈등이 혁명적 사회구조변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예언이 현실 앞에 좌절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래서 그람시는 감옥에서 착취자/피착위자의 이원적인 대립구도보다 더 현실적인, 더 복잡하고 치밀한 지도세력/지지세력에 대한 분석에 들어갑니다. 그렇기에 그람시가 당시 이탈리아 정치판을 분석한 것은 필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실증작업은 전혀 다른 시대와 사회에서 그람시를 읽어야 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높은 장해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람시의 개념을 통해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을 연구하는 이 책이 오히려 더 친근하고 쉽게 읽힐 수 있습니다. 그람시의 개념들을 응용한 연구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경험했던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그람시가 가졌던 문제의식과 아이디어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정권, 박정희와 유신정권 사이 유사성을 관찰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사회 지배계급에 대한 분석까지 나아가는 저자의 글쓰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그람시가 '무엇을'이야기했는지 모르더라도, '어떻게' 그것을 이야기하려 하였는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박근혜정권이 전성기를 지나 몰락기에 들어설 즈음이었던 2015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지금은 박근혜정권이 급속도로 몰락하고 새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의의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국정농단이라는 과오로 인해 탄핵으로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지배세력의 연합이 견고하고 막강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은 더 많은 시사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 지배계급 연합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후속연구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